시보리

시보리(しぼり)는 스피닝 선반(spinning lathe)에 금속판과 금형을 맞물려 고속으로 회전시킨 뒤 주걱봉으로 금속판을 밀어내어 금형 모양에 맞게 변형시키는 가공 방식이다. 평평한 금속 원판을 봉으로 밀어 원뿔 혹은 반구 형태로 늘리는 공정으로 금속의 늘어나는 성질인 연성(ductility)을 이용하는 소성가공이다. 주걱이라는 뜻의 ‘헤라(へら)’라고 불리는 주걱봉 모양의 공구를 이용하기 때문에 ‘헤라시보리’라고도 부르고, 스피닝 선반을 이용하기 때문에 ‘스피닝’이라고도 한다.

스피닝 선반은 공구를 이용해 가공할 수 있게끔 공작물을 고정해 고속으로 회전시킨다는 점에서 범용 선반의 기계 구조와 유사하다. 하지만 선반 심압대에 함께 물려 고속으로 돌아가고 있는 금형과 원판을 롤러로 밀어낼 때,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힘을 주기 때문에 선반 베드에 구멍이 뚫린 주걱대가 설치되어 있다. 주로 제작하는 공작물의 크기가 다양하기 때문에 기계를 주문제작하거나 개조하는 경우가 많다. 숙련된 기술자의 경우 금형 없이 시보리를 하기도 하는데 이를 ‘공간 시보리’라고 한다. 스테인레스를 가공할 경우 불로 금속을 달구면서 시보리를 한다.

60, 70년대만 하더라도 원판을 다를 수 있는 원절기가 없어 철판에 컴파스로 필요한 지름의 원을 그린 뒤 작두로 철판을 잘라 사용했다고 한다. 시보리 가공을 하기 위해 마루기리라는 철판 절단 공정은 필수였고, 주로 공장의 꼬마들이 이 공정을 맡아서 하다 차후 시보리 기술자가 됐다. 80년대 이후부터는 원절기라는 기계를 통해 철판을 원하는 지름으로 절단했다.

시보리 가공은 고속으로 회전하는 철판을 몇 차례 안에 밀어내야 하기 때문에 힘도 많이 들고 위험한 작업이다. 그래서 공업화 초창기에는 금형제작 기술과 함께 시보리 기술이 인력 많이 필요했고 대우도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시보리 가공이 자동화되었고, 소형 시보리 가공은 프레스로 대체되기도 해서 필요가 많이 줄었다. 더군다나 중국이나 베트남 등지의 값싼 노동력이 이 공정을 담당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시보리 기술자 시장이 크게 줄어드는 상황이라고 한다.

많은 공업 용어들이 그렇듯 이 용어도 일본어이다. ‘시보리’는 일본어로 ‘쥐어짜기’라는 뜻인데, ‘헤라(へら)’ 혹은 데꼬(てこ)’라고 부르는 긴 봉(roller)으로 회전하는 금속판을 쥐어짜는 것처럼 보여 시보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의류에서 손목과 발목 부분에 조이는 부분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시보리라는 용어와 뜻은 동일하다.

금속 성질에 따른 가공법 ⓒ최혁규 2020
한라금속의 시보리 장비 ⓒ최혁규 2019
한라금속 금형 ⓒ최혁규 2019
주걱봉으로 금속판을 밀고 있는 삼성시보리 기술자 ⓒ최혁규 2019